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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제,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말하자
나영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 ㅣ 2012년 1-2월 | 54호 ㅣ 1268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원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한 성소수자 공동행동의 농성장에서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들고 왔던 피켓 중 가장 눈에 띄었던 내용은 어떤 여성분이 열심히 들고 다니던 “엄마, 오늘 학교에서 항문성교 배웠어요”였다. “우리 엄마는 초등생, 우리 아빠는 중등생” 같은 피켓도 있었다. (농성단 중 누군가는 이 피켓을 보고 “이 와중에도 나이 많은 중등생을 남성 가부장으로 설정했다”며 정곡을 찌른 바 있다.)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동성애자, 미혼모가 늘어난다’며 호들갑을 떠는 그들의 한심한 독해능력에 당시에는 모두 기가 찰 따름이었지만, 사실 그 구호들이야말로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생인권을 얘기하며 우리가 정면으로 돌파해야할 과제가 무엇인지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과연 학교에서 항문성교를 배우면 안 되는가? 청소년에게 ‘섹스’는 금지되어야 하는 것인가? 성소수자와 비혼모 청소년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청소년도 섹스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차마 꺼내지 못하는 현실에는 모순이 있지 않은가? 집회와 종교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청소년 스스로 그 권리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듯이, 성소수자와 비혼모 청소년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당연히 학교에서도 청소년의 성과 성적 욕망, 성적 권리,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충분히 배우고, 자연스럽게 토론하고,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남긴 과제이고, 우리가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할 일들이다.

청소년의 성 통제를 둘러싼 메커니즘

「Thinking Sex」라는 게일 러빈(Gayle Rubin)의 논문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횡행하는 동안 우익들이 ‘비 가족적 성’을 공산주의나 정치적 약점과 연관시키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알프레드 킨제이는 ‘미국인의 도덕적 기질을 약화시키고, 공산주의의 영향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의회와 언론에 공격당하다가 결국 1954년부터는 록펠러 보조금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익 세력들은 「성교육 소동: 학교에서의 포르노」,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교육위원회」 같은 책이나 팸플릿을 통해 교육위원회와 성 정보센터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가족을 파괴하고 국가적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심지어 「파블로브의 아이들(당신의 아이들일 수도 있다)」라는 팸플릿에서는 유네스코(UNESCO)가 종교적 금기를 약화시키고, 비정상적 성적 관계의 허용을 부추기며, 도덕 기준을 하락시키고, 백인(특히 백인 여성)을 흑인의 소위 ‘열등한’ 성적 기준에 노출시킴으로서 ‘인종적 결속력을 파괴’하기 위하여 교육위원회와 한통속이 되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우익인 노먼 포드호레츠는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무능력함을 동성애자들 탓으로 돌리는 비난 글을 썼고, 이렇게 우익들이 성교육, 동성애, 포르노, 낙태, 혼전 성관계 등을 정치적 이슈로 삼기 시작하자 이는 1980년 선거에서 우익의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 이 모든 상황들이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게일 러빈의 글에 서술된 미국 우익들의 역사가 현재 한국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을 비난하며 교육위원회와 유네스코가 한통속이 되었다고 공격했다는 부분에서는 현재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상황들과 너무도 흡사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20세기 미국과 21세기 한국을 똑같이 움직이고 있는 이 메커니즘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사실 청소년의 성이 본격적으로 통제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이다. 산업혁명과 식민지배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면서 노동인구를 효율적으로 유지·관리하고 노예와 노동자·시민들을 윤리적으로 단속하는 일이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산업이 발달하고 의무교육이 체계를 잡아감에 따라 아동은 점차 ‘비숙련 노동자’에서 ‘양육 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어갔다. 그리고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 시민의 중요한 의무로 자리를 잡아갔기 때문에 ‘안정적 가정’을 구성·유지할 수 있는 적정 연령은 사회경제적 기준에 따라 변동되었다. 한편으로, 교육의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또 다른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청소년은 사회적 자본 창출을 위해 요구되는 적정 수준까지의 교육을 받고, 필요한 노동력이 되기에 적합한 연령이 되어 ‘안정적 가정’을 이룰 수 있기 전까지는 섹스를 해서 함부로 또 다른 수요-고용, 주거, 양육, 교육, 복지 등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를 만들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청소년의 성 통제는 사회경제적 필요에 의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유지를 위해 점차 강화되어 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이렇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해 청소년의 성을 통제해온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었던 방법은 ‘금지’이다. 그래서 청소년에게는 모든 성적 행동과 성적 호기심, 성적 매체에의 접근, 성 관련 영역에의 고민과 토론 등이 전면적으로 금기시되어 왔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것은 청소년에게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통제를 위해 매우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윤리적 기준이 만들어지고, 이를 근거로 한 사상의 통제, 표현의 통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앞서 게일 러빈의 글에서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기에도 매우 유용한 근거가 될 수 있다(이는 우리나라에서 음란물 단속이나 사전검열, 유해매체 선정 등이 가져왔던 사회적, 정치적 효과들만 생각해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배제’이다. 학교에서는 ‘이성’간에 이루는 ‘건전한 가족’의 모습을 교과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재현하고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사회경제적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반면 ‘혼전/혼외 성관계’, ‘이성애 외의 관계’ 등은 배제되고 금기시된다. 문제는 배제되는 대상이 언어나 교육의 내용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기된 성적 행동을 한 학생들조차도 학교에서 ‘배제’시켜버리기 때문이다. 남녀의 고정된 성역할/성행동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학생, ‘이성애’ 외의 성적 지향을 가진 학생, 혼전 섹스를 한 학생, 임신이나 출산을 한 학생 등은 모두 공공연한 ‘배제’와 ‘퇴출’의 대상이 된다. 학교에서는 이들을 공공연하게 탄압하고, 낙인찍고, 퇴출시킴으로써 ‘이성애 규범 교육의 산실’로서의 자기 위치를 유지해 나간다. 따라서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인정 없이는 청소년 성소수자, 비혼모 등 학교에서 허용하는 ‘성적 규범’을 벗어난 학생들에 대한 차별이 중단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메커니즘을 보면 청소년의 성에 대한 통제가 비단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남성 가부장 중심의 이성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유지와 이를 통한 체제 유지에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곧 사회 전체의 성적 시스템과 여기에 얽혀있는 모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작동 구조들을 건드리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위하여

그렇다면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으며 어떠한 조건과 준비들이 필요한가? 가장 기본적인 일은 성에 대한 금기를 해제하는 것이다. 감추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스웨덴은 4~5세부터 남녀의 신체구조를 그림과 인형 등을 통해 배우고 11~13세 때에는 자위행위, 임신 중의 태교 등에 대해서까지 배운다. 17~20세가 되면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복지정책까지 다루게 된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6학년 정도가 되면 콘돔 사용법과 동성애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청소년 때 게이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게 된 한 청년의 사례를 읽고 수업시간에 함께 토론하고 집에서 부모와 이야기해보도록 숙제를 내주기도 하는 것이다. 성에 대한 정보들을 금기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접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편견 없이 성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성적 정보나 지식만이 아니라 신체, 감정, 욕망, 섹스, 관계, 권리 등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체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몸과 욕망을 이해하고 긍정하기,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이해하기, 거부하기, 협상하기, 감정 다스리기, 젠더 역할과 관계 인식하기, 성차 이데올로기에 대해 문제설정하기, 다양한 성 정체성/성적 지향/성적 취향 등을 이해하고 긍정하기, 성적 표현 존중하기, 자신의 젠더에 대해 탐구하기, 성적 행동에 대한 가치 이해하기, 성적 위기 상황 인식과 협상, 자기 방어 능력 기르기, 자아 존중감 증진하기, 자기표현 능력 기르기, 성적 행동에 대한 가치 이해하기, 성폭력에 대해 인지하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2)

기본적으로 이러한 교육을 할 수 있으려면 교육당국과 교사들부터 성과 성적 권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하며, 끊임없는 교사 재교육을 통해 교사들이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 교육을 통해서도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청소년들이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성적 편견과 억압, 차별에 괴로움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례로, 영국의 경우 SRE(Sex and Relationship Education) 프로그램을 통해 각 학교의 성교육 커리큘럼과 실행에 지침을 제공하고 있는데 각 학교의 SRE 정책은 부모들과 지역사회의 공동 협의과정을 통해 개발되어야 한다. 10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이 비단 학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SRE의 전 과정에 각 주체들의 의무와 책임이 강조되기도 한다.(3)

물론 이와 같은 일들이 학교 교육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청소년의 성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정책적, 제도적 변화이다. 청소년의 독립권과 노동권 보장,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 등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과 법률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청소년 교육에서 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의 다양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철폐,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인정 등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 교사부터 책임감을 가지길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교권이 추락한다’, ‘학교가 붕괴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은 어쩌면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무거운 책임의 의미를 인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어떠한 책임이어야 하는지는 모르는 채, 지금까지와 같이 더 이상 교사의 권위와 권력만으로 교육을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 터이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지금까지 ‘인권’ 대신 ‘권력’으로, ‘이해’ 대신 ‘권위’로 학생들을 통제하면서 그것을 ‘교육’이라고 오해해 왔다. 그 결과 학생들에게 자신과 타인을 긍정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정해진 기준과 규범에 맞지 않으면 배제하고 차별하는 법을 가르쳐 왔고, 때로 그것은 교사와 학생을 불문하고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학교 교육의 방식에 익숙해진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들의 소식이 연일 가슴을 죄는 요즘에도 학생인권조례를 뒤흔들고, 되돌리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현실을 보며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이들은 교육당국과 교사들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는 당연히 더 많은 책임과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고, 지금과 같은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교육당국과 교사들은 이 변화의 책임을 기꺼이 지고 실행에 나서야 한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성소수자와 비혼모 청소년들을 공공연하게 처벌하고 학교에서 내쫓는 방식으로 학교라는 유리성을 폭력적으로 유지하려해서는 안 된다. 항문성교는 이성 간, 동성 간을 불문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다양한 체위 중의 하나라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을 때, 임신을 한 10대 여성 청소년이 자신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인지하고 누군가의 강압이나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로 임신의 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출산을 한 학생에 대해서도 학교와 사회가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 조항은 제 의미를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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